"선생님!! 1405호 환자가...." "왜, 또 무슨 일이야?" "저.. 자꾸 약을 거부해서.."
간호사는 우물쭈물 진기의 눈치를 봤다. 오늘만 해도 벌써 4번째. 백 명이 넘게 안치되어있는 병동에서 한 환자에게만 신경 쓸 수 없는데도 결국 마지막엔 찾다찾다 못해 진기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병원이라는 게 본래 그렇다싶겠지만 환자는 유독 진기에게 집착이 강했다.
"괜찮아. 어차피 지금 좀 쉬고 있었어. 얼른 가보자." "죄송해요.."
진기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싱크대로 부었다. 여간호사의 안내가 필요 없이 성큼성큼, 오늘 무려 네 번째로 그를 만나러 간다.
"종현아."
병실로 들어섰을 땐 흰 이불시트를 뒤집어씌운 환자를 움직이려 애쓰는 남간호사가 두 명, 곁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여간호사 한명이 있었다. 필히 몇 십분은 실랑이를 벌였으리라. 그럼에도 진기는 조금도 성가셔하는 기색 없이 남간호사 둘을 저지하고 종현의 곁에 앉았다.
"종현아, 무슨 일이니?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지 않으면 악몽을 꾸게 돼." "..." "종현이, 악몽이 무섭다고 했지 않았어? 주사 맞는 게 악몽보다 더 무서워?"
이불시트사이로 쪼그맣게 고개를 내민 종현의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말을 잃어버린 환자는 입을 오므렸다 벌었다 꿈뻑 거렸다.
"아니야? 주사맞는게 무서운거 아니야?"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어린 환자. 마음이 어린 환자. 진기는 그런 종현을 가만히 쳐다보다 급히 간호사를 불렀다.
"김간! 잠시만.."
그리고 간호사에게 귓속말로 무어라 지시를 한 뒤, 다른 간호사들을 모두 내보냈다.
*
"전혀 몰랐어요. 설마 소변을.." "그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구만. 어휴 나 진짜 땀 뺐어."
종현의 병실에 있었던 남간호사 한 명이 제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종현군 같은 경우엔 다른 환자들보단 훨씬 양호하니까요. 가끔은 정말 일반인인것 같아서 저도 착각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만도 해."
진기는 예쁘게 썰려진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정신분열에 실어증에.. 뭐였더라? 강간당해서 그렇게 된 거 맞지?" "최간, 거기까지만 해." "아, 죄송해요 선생님."
머쓱하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간호사에게 괜찮다며 고개를 저은 진기는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가세요?" "종현이 보러." "선생님 1405호 환자 너무 아끼시는거 아니에요? 이름도 부르구." "내가 그랬나?" "에이, 선생님. 환자 편애하시면 안되죠~"
진기는 웃으면서 휴게실을 나섰다.
"이쁜 환자니까 이뻐하는게 당연하지."
*
몇 달전. 한명의 환자가 입원했다. 평범, 하기보다 오히려 잘생긴데다 앳된 얼굴에 여간호사들이 몰려들었지만 이내 환자라는 소식에 모두 김이 새버렸다. 그렇게 모든 이의 관심을 받은 어린 환자는 고작 18세 밖에 되지 않은 고등학생이었다.
처음 본 종현의 모습은 남자다운 인상에 비해 커다란 눈, 야윈 몸, 가는 다리, 음울해 보이는 얼굴. 일자로 꾹 다문 입. 진기는 그저 왕따나 가정불화에 의한 단순 우울증이라고 판단했으나 그의 모친의 발언에 그만 볼펜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여러 검사를 하기위해 여간호사를 동행해 종현을 보내고 상담실에서 그의 모친과 마주앉은 진기는 몇 분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그녀를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선천적인 정신병이 아닌 후천적 정신병은 대부분 동기로 인한 병이었기 때문에. 특히 종현과 같이 거의 다 자란 성인의 경우엔 더더욱 그랬다.
"아이가 매춘을 당했어요."
모친은 그 한마디를 하는 것이 제 장기들을 토해내듯 벅차 보였다. 고작 그 한마디에 그만 울음을 터뜨리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까지만 해도 종현은 여느 고등학생과 다름없이 평범한 남학생이었다고 한다. 활기차고 사교성도 좋아서 주변 친구들도 많았고 여자 친구도 여럿 있었을 정도였다고.
"그 날도 학교 야간자율이 끝나고 저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아요. 사모님, 아드님 집에 가는데 아이스크림 준비해주세요, 라고. 요 장난끼 많은 녀석이 애교를 부려 대서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석 달을.. 석 달을 볼 수 없었어요 선생님.."
11시쯤, 종현은 귀가 중 납치를 당했다. 인신 매매범들에게 끌려가 죽을 만큼 맞았다고. 보통 남성을 납치한 경우 장기를 내다 팔아버리거나 다리를 뭉텅 잘라버려 비럭질을 시키는 게 대부분이었으나 종현같은 경우엔 조금 예외였다고 했다. 계집애 마냥 생긴 것도 아닌데 제법 잘난 외모에 작은 체구, 가녀리진 않았지만 마른 몸, 묘한 분위기가 매춘의 이유였다고.
"그렇게 잡은 애들은 평범한 매춘도 아니래요. 더 깊숙이,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에. 그러니까 웬만한 사람들이 하지 않으니까.. 희귀해서 돈을 더 많이 받아먹는 곳에 팔아버린대요. 종현이가.."
처음 시작은 종현을 납치한 여러 명의 인신매매범들이 무자비하게 집단 강간을 하고, 약을 먹여 더러운 새끼들에게 보내졌다고. 대부분이 지독한 SM플레이를 즐기는 자들이나 중년 남성, 난교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발견했을 때 종현은 유두에 피어싱이 끼워져 있고 요도부분과 항문이 헐어 상태가 심각했었다고 했다.
물론 내부도 마찬가지여서 정신병원으로 오기 전엔 외과병원에 두 달을 입원해 있었다고 했다. 등과 둔부는 기다란 회초리에 맞은 듯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못해 고름이 져버려서 눕지도 앉지도 못한데다 영양실조, 빈혈에 스트레스에, 납치되기 전보다 몸무게가 8kg이나 빠져 그땐 정말 뼈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그 씨발새끼들이 별짓을 다 했나 봐요. 정말 별짓을 다 했나 봐요. 고작 열여덟인데. 우리 종현이, 이제 겨우 열여덟인데. 쳐 죽일 새끼들.. 개새끼들.."
양손을 얼굴에 묻고 오열하는 어미의 어깨를 진기는 가만히 두드려 주었다.
"나중엔 더러운 창촌에 있었대요. 약에 취해서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몰랐나 봐요. 1평도 안되는 곳에서 아무나 다 받고 있었대요. 때리면 때리는대로, 약을 주면 주는대로 다 받고 있으면서도.."
모친은 이야기를 하다말고 제 핸드백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몇 번 만지작 거리더니 진기에게 건내 보였다. 진기는 천천히 문자를 읽었다.
[ㅇ·ㅁㅏ]
"뭔지 모르겠죠? 엄마에요. 아무 말도 없고 그냥 엄마였어요. 저 이걸로 종현이 찾았어요. 이걸로.."
매춘을 하고 약에 취해 모든 게 몽롱해진 상황에서도 놓여진 상대방의 휴대폰에 겨우겨우 써넣었을 문자 한통. 문자도 제대로 치지 못하는 마당에 번호를 입력하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모친은 낯선 이에게서 온 문자임에도 단박에 알아채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었다. 겨우겨우 석 달 만에 만난 제 아들은
정상인이 아니었다.
"다 나아 질 꺼라고 기대도 안해요. 그런 일을 당했는데, 누가 정상으로 살아. 종현이가 편안해졌으면 좋겠어요. 이제 그런 일은 없다고. 살아갈 수 있다고.. 집에서 보는 종현이 모습은.. 저 정말 견딜 수 없어요.."
수없는 발작, 틈만 나면 터트리는 울음. 충격으로 걸려버린 실어증 때문에 내는 소리라곤 간신히 내뱉는 새된 소리, 이미 백치가 되어버린 종현을 어미는 그래도 어떻게라도 돌보겠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주위의 만류와 권고로 이곳에 올 수 밖에 없었다며 긴 이야기를 끝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처음으로 병실에서 종현을 마주친 진기는 조금의 불안감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작은 불안감은 물 녹듯 사라졌다.
"종현아?"
그의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돌린 종현이 처음으로 지어보인 희미한 웃음. 나중에 되어서야 상냥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되어서였다고. 그러나 그게, 얼마나. 얼마나 진기를 흔들어 놓았는지 저 혼자 모른 체. 그랬다.
진기는 속된 말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정신병원 의사가 정신병이 있는 환자에게 사심을 가져버렸다.
어쩌면 종현도 그랬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으로 진기에게 웃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진기는 그렇게 남몰래, 다른 환자들보다 조금 더 그에게 애정을, 관심을, 사랑을 주고 말았다. 진기는 늘 종현을 불렀다. 다정하게, 종현아. 하고.
종현은 그렇기에 늘 진기를 따랐다. 치료도 진기가 아니면 죄다 거부해버려서 하루에 몇 번이고 종현의 병실 문을 열어야했던 진기는 조금도 서슴치 않고서,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그를 돌봤다. 악몽 때문에 발작을 일으키며 울고야 마는 어린환자의 모습이 그렇게 이쁘지 않을 수 없었다.
폐쇄된 병실공간으로 발작을 심하게 일으키는 날엔 종현은 울면서 병원 복도를 뛰어다녔다. 남간호사들이 애써 붙잡아 말리면 제 손목을 물어 자해를 해버려 손쉽게 잡을 수도 없었다. 그런 종현을 멈춰 세우는 것 또한 늘 진기의 몫이었다.
발작이 너무 심할 땐 어쩔 수 없이 양팔을 묶는 병원 복을 입힐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
진기는 하루하루마다 종현의 속에 침식되어가고 있었다. 이쁜 환자. 다정히 이름을 불러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배시시 웃던 환자. 실어증에 걸려버린 말없는 환자.
진기는 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천천히,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 "아, 미안. 미안해 종현아."
잡은 것 만큼 빠르게 손에 힘을 풀어 아무렇지 않았던 마냥 다시 종현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종현이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봤으나 그는 무슨 일 있냐는 듯 제 순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늦은 시각. 새벽의 병동은 으스스했다. 진기는 비상등만이 켜진 캄캄한 복도를 걷고 있었다. 뚜벅이며, 어느 병실 안에선 정신 나간 사람의 신음소리이가 간간히 새어나와 스산함을 더했다. 아무리 정신병원의 간호사라고 해도 여간호사들은 밤에 근무하기를 꺼려해 두, 세 명정도의 남간호사들이 야근을 했다. 창문 사이로 달빛이 들어 진기의 얼굴을 비췄다.
지독히도 순한 얼굴이었다. 제 얼굴로 득을 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모범생에 듣기 좋은 목소리, 편안한 얼굴로 늘 선생님과 반애들에게도 인기만점. 부유한 집안에 독남으로 자라 전교회장도 해보았다. 곧은 철로 같았다.
진기는 곧은 철로 같았다.
쭉 뻗어 오직 한 방향으로 가는, 갈림 길 없는 철로.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철컥,
그가 들어선 병실 문 앞엔 1405호가 적혀있었다.
"종현아. 자니?"
가만히 들어선 그가 테이블램프를 켰다. 은은한 주황빛 불빛이 주변을 밝혔다. 천천히 눈을 뜬 종현이 가만히 상체를 일으켰다. 제 앞에 서있는 커다란 남자. 제가 좋아하는 순한 얼굴을 한 남자는 의사가운을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종현의 옆에 앉았다.
"종현이가 어떨까 싶어서 와봤어. 상태는 괜찮아 진거야?"
종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기는 종현의 어깨에 손을 올려 천천히 쓰다듬었다.
"다행이다. 오늘도 발작을 일으켜서 깜짝 놀랐어. 기분은 어때?"
종현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진기는 그런 종현의 어깨를 끌어 방향을 틀었다. 종현은 진기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정면을 쳐다보다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 진기를 냅다 끌어안았다.
정면에는 거울이 있었다. 분명 낮에만 해도 없었던 거울이, 종현의 병실엔 찾아볼 수 없는 거울이 있었다.
"괜찮아 종현아. 앞을 봐야지. 응?"
종현이 가장 무서워 하던 것이 있었다. 거울이었다고, 모친은 집에 있을 때도 그가 거울이란 거울은 모조리 다 깨버려 유리조각 때문에 크게 다칠뻔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종현이 결코 참을 수 없었던.
종현이 이틀 동안 감금되어있었던 방안엔 거울이 있었다.
"종현아."
진기는 종현의 얼굴을 들어 올려 입을 맞췄다. 종현이 기겁을 하며 그의 어깨를 퍽퍽치다 비집고 들어오는 그의 혀를 냅다 물어버렸다. 급히 떨어진 종현을, 진기는 손을 올려 뺨을 쳤다.
밀듯이 쳐 내린 손에 종현은 그만 침대에 고꾸라졌다. 진기는 종현을 일으켜 세워 끌듯이 거울 앞에 세웠다. 천천히 단추를 푸르는 손, 귓등을 핥는 혀. 종현은 제가 할 수 있는 대로 손발을 휘둘러 그의 품을 벗어나려했다. 진기는 서랍을 열어 벨트를 꺼내 그의 손목을 잡아 침대 기둥과 묶어버렸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종현이 뭐라 소리쳤지만 소리는 그저 공중에서 흩어질 뿐이었다.
“종현아. 사랑해.”
지독히도 순한 얼굴에, 지독히도 부드러운 음성.. 음조. 테이블램프의 은은한 주황빛도 그의 모든 것을 비추진 못했다. 종현은 아래서 그를 올려다보며 가장 잔인한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주황빛이 닿지 못한 그늘진 그의 얼굴. 반쪽만 드러낸 그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 종현은 이를 부닥치며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아아, 세상에.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종현이가.. 우리 종현이 어떡하면 좋아요. 흑.. 흐윽..”
종현의 어미는 오열했다. 양손을 얼굴에 묻고. 그런 어미의 등을 곁에서 다독이는 것은 진기의 손이었다. 간호사들도 우울한 표정을 하고 곁에 서있었다.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어머니. 마음을 단단히 잡으셔야만 해요. 종현이 같은 경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과거의 아픔이 생생히 떠올라 나중에는 완전히 자아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오랫동안,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입니다. 종현이는..”
아무도 보지못했을 것이다. 그의 웃음을. 그가 몇십 년을 감춘 그의 이면. 그는 그의 어미의 귀에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감정을 절제하고서 말을 이었다.
“종현이는..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어머니. 제가 아끼는 환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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